혈관과 혈압
심장이 하루에 내보내는 피는 약 7,000 L다. 그 피는 굵기가 엄지손가락만 한 대동맥에서 시작해 머리카락보다 가는 모세혈관 수십억 개로 갈라졌다가 다시 모인다. 이 관들의 굵기와 탄성이 혈압을 정하고, 혈압은 다시 어느 장기에 피가 얼마나 갈지를 정한다. 이 장은 혈관을 흐르는 피의 물리학, 혈압을 재는 방법과 숫자의 의미, 그리고 일어설 때마다 몸이 혈압을 지켜 내는 반사를 직접 돌려 본다.
- 푸아죄유 법칙으로 혈관 반지름이 조금만 바뀌어도 흐름이 크게 바뀌는 이유를 설명한다.
- 장기들이 병렬로 이어져 있어 각 장기가 자기 혈류를 따로 조절할 수 있음을 안다.
- 순환을 따라 압력이 어디서 가장 많이 떨어지는지, 모세혈관에서 피가 왜 느린지 말한다.
- 동맥의 탄성이 맥압을 정하는 원리와 커프로 혈압을 재는 원리를 이해하고, 혈압 숫자를 분류한다.
- 일어설 때 중력이 만드는 압력 차와 압반사, 모세혈관의 스탈링 힘과 부종을 설명한다.
반지름의 네제곱: 조금 좁아지면 많이 줄어든다
피가 관을 흐르는 양은 관 양 끝의 압력 차에 비례하고, 흐름을 방해하는 저항(Resistance)에 반비례한다. 전기의 옴 법칙과 같은 모양이다. 혈관 전체로 보면 \(CO = (MAP - CVP) / TPR\), 즉 심박출량은 평균 동맥압과 중심 정맥압의 차이를 총 말초 저항(Total peripheral resistance, TPR)으로 나눈 값이다.
저항을 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19세기 의사 푸아죄유가 가는 유리관에 물을 흘려 찾은 답은 놀랍다. 관이 길수록, 액체가 끈적할수록 저항이 커지지만, 무엇보다 반지름의 네제곱에 반비례한다.
아래 혈관의 위쪽 벽을 끌어 반지름을 바꿔 보자. 피의 속도는 벽에서 0이고 가운데에서 가장 빠른 포물선 모양이다.
혈관 벽을 끌어 반지름 바꾸기
네제곱 법칙은 몸에게 강력한 손잡이다. 혈관 벽의 민무늬근(Smooth muscle)이 조금만 조이거나 풀어도 흐름이 몇 배씩 바뀐다. 이 손잡이가 가장 촘촘하게 달린 곳이 동맥의 마지막 가지인 세동맥(Arteriole)이다. 반대로 동맥 경화반이 혈관 안쪽을 반만 막으면(반지름 50 %) 같은 압력에서 흐름은 1/16로 준다. 가슴 통증(협심증)이 증상으로 나타날 때쯤이면 관상동맥이 이미 꽤 좁아져 있는 이유다.
장기는 병렬로 이어져 있다
대동맥에서 갈라진 동맥은 뇌, 심장 자신, 소화관과 간, 콩팥, 근육, 피부로 각각 따로 간다. 전기 회로로 치면 장기들은 병렬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 모든 장기는 거의 같은 압력(평균 동맥압 약 93 mmHg)의 피를 받고, 각자 자기 세동맥을 조이거나 풀어 받을 양을 정한다. 병렬 저항은 역수로 더하므로 \(1/R_{total} = \sum 1/R_i\)가 되어, 전체 저항은 가장 작은 저항 하나보다도 작다.
아래 회로에서 장기의 꼭지(세동맥)를 좌우로 끌어 저항을 바꿔 보자. 직렬이었다면 어떻게 될지도 비교한다.
병렬 회로: 장기마다 따로 여닫는 꼭지
병렬 배치 덕분에 운동할 때 근육은 다른 장기와 다투지 않고 자기 꼭지를 열 수 있다. 하지만 꼭지를 연 만큼 전체 저항이 떨어지므로 심장이 더 내보내지 않으면 혈압이 떨어진다. 그래서 운동은 늘 심장과 혈관이 함께 하는 일이다(7장).
순환을 따라: 압력은 어디서 떨어지는가
대동맥에서 약 100 mmHg이던 평균 압력은 대정맥에 이르면 거의 0이 된다. 그런데 떨어지는 모양이 고르지 않다. 큰 동맥에서는 거의 떨어지지 않고, 세동맥을 지나는 짧은 구간에서 절반 넘게 떨어진다. 저항이 가장 큰 곳이 세동맥이기 때문이다. 맥박처럼 출렁이던 압력도 세동맥을 지나며 잔잔해진다.
속도는 또 다르다. 모세혈관 하나는 가장 가늘지만 수십억 개가 나란히 있어 모두 합친 단면적은 대동맥의 약 1,000배다. 같은 양의 피가 넓은 길을 지나니 아주 느려진다. 아래에서 커서를 끌며 구간마다 압력·단면적·속도를 읽어 보자.
대동맥에서 대정맥까지
심박출량은 어느 단면에서나 같다(초당 약 83 mL). 그래서 \(v = Q / A\), 속도는 총 단면적에 반비례한다. 대동맥에서 초당 약 30 cm로 달리던 피가 모세혈관에서 초당 약 0.3 mm로 거의 멈추듯 지나가며 물질을 주고받은 뒤, 정맥에서 다시 빨라져 심장으로 돌아온다.
동맥의 탄성과 맥압
심장은 박출기(약 0.3초)에만 피를 내보내고 나머지 시간에는 쉰다. 그런데도 몸의 피는 끊기지 않고 흐른다. 대동맥이 고무풍선처럼 수축기에 늘어나 피 일부를 품었다가 이완기에 줄어들며 밀어내기 때문이다. 이것을 소방 펌프의 공기 탱크에 빗대 윈드케셀(Windkessel) 효과라 한다.
대동맥이 잘 늘어날수록(탄성, 순응도(Compliance)가 클수록) 같은 박출량을 받아도 압력이 덜 오르고, 이완기에 더 오래 밀어 준다. 나이가 들면 동맥벽의 탄성 섬유가 끊기고 콜라겐과 칼슘이 쌓여 동맥이 뻣뻣해진다. 아래에서 동맥의 나이를 올려 보자.
늘어나는 대동맥: 탄성과 맥압
커프로 혈압 재기
팔에 감은 커프(공기 주머니)를 수축기 혈압보다 높게 부풀리면 위팔 동맥이 납작하게 눌려 피가 멈춘다. 공기를 천천히 빼다가 커프 압력이 수축기 혈압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박동의 꼭대기에서만 피가 좁은 틈으로 뿜어져 나가며 소용돌이가 "툭, 툭" 소리를 낸다. 이것이 코로트코프 소리(Korotkoff sounds)다. 커프 압력이 확장기 혈압 아래로 내려가면 동맥이 내내 열려 있어 소리가 사라진다.
코로트코프 소리로 혈압 읽기
자동 혈압계는 소리 대신 커프 안 공기의 미세한 출렁임(진동)을 재서 계산한다. 어느 방식이든 한 번의 측정은 흔들린다. 진료실에서는 긴장해서 높게 나오기도 한다(백의 고혈압). 그래서 5분 쉬고 앉은 자세로, 팔을 심장 높이에 두고, 1~2분 간격으로 두 번 이상 재서 평균을 내고, 집에서도 아침저녁으로 재 보는 것이 권장된다.
혈압 숫자의 의미
혈압은 연속적인 값이지만 진료에서는 구간으로 나눈다. 높은 혈압이 오래 이어질수록 뇌졸중, 심장병, 콩팥병 위험이 꾸준히 커지기 때문이다. 수축기·확장기 중 더 높은 쪽 등급을 따른다. 아래 지도에서 점을 끌어 보자.
혈압 지도: 두 숫자가 만드는 구간
| 분류 | 수축기(mmHg) | 확장기(mmHg) | |
|---|---|---|---|
| 정상 혈압 | 120 미만 | 그리고 | 80 미만 |
| 주의 혈압 | 120~129 | 그리고 | 80 미만 |
| 고혈압 전단계 | 130~139 | 또는 | 80~89 |
| 고혈압 1기 | 140~159 | 또는 | 90~99 |
| 고혈압 2기 | 160 이상 | 또는 | 100 이상 |
기준은 학회와 시기에 따라 다르다. 국내 지침은 위 표처럼 140/90부터 고혈압으로 보지만, 미국 심장학회 지침(2017)은 130/80부터 '1단계 고혈압'이라 부른다. 숫자 하나보다 여러 번 잰 평균과 다른 위험 요인(흡연, 당뇨, 콜레스테롤, 가족력)을 함께 본다.
이 장의 수치와 시뮬레이터는 원리를 보여 주기 위한 교육용 모델입니다. 혈압이 반복해서 높게 나오거나, 일어설 때 자주 어지럽고 쓰러질 것 같거나, 다리가 계속 붓는다면 의료진과 상담하세요. 혈압약은 스스로 끊거나 양을 바꾸지 않습니다.
일어서면 중력이 피를 끌어내린다
누워 있을 때는 머리에서 발까지 혈관이 모두 심장 높이에 있다. 일어서면 피의 기둥 무게가 더해진다. 피 1 cm 기둥의 무게는 약 0.78 mmHg다(\(\rho g h\)). 키 175 cm인 사람의 발은 심장보다 약 1.2 m 아래에 있으니, 서 있는 동안 발의 동맥과 정맥에는 약 90 mmHg가 더 걸린다. 머리는 심장보다 약 45 cm 위라 그만큼 압력이 낮다.
더 큰 문제는 정맥이다. 벽이 얇은 다리 정맥은 늘어난 압력에 부풀어 피를 약 0.5 L 더 담는다. 그만큼 심장으로 돌아오는 피가 줄어 1회 박출량이 떨어진다. 아래에서 침대를 끌어 일으켜 보자(기울기 검사대).
기울기 검사대: 중력과 피 기둥
모세혈관: 물이 드나드는 문
모세혈관 벽은 세포 한 겹이고 그 사이에 틈이 있어 물과 작은 분자는 드나들지만 큰 단백질(알부민)은 거의 못 나간다. 물을 밖으로 미는 힘은 혈관 안의 정수압(혈압)이고, 안으로 당기는 힘은 혈장 단백질이 만드는 교질 삼투압(Oncotic pressure)이다. 두 힘의 균형을 스탈링 힘(Starling forces)이라 한다.
모세혈관 앞쪽에서는 정수압이 이겨 물이 나가고, 뒤쪽에서는 삼투압이 이겨 대부분 돌아온다. 남는 몫(하루 약 2~3 L)은 림프관(Lymphatic vessel)이 거둬 정맥으로 돌려보낸다. 이 균형이 깨지면 조직에 물이 고인다. 그것이 부종(Edema)이다.
스탈링 힘과 부종
압반사: 일어설 때 혈압을 지키는 고리
일어서면 다리에 피가 고여 박출량이 줄고, 혈압이 떨어지려 한다. 목의 경동맥동(Carotid sinus)과 대동맥궁 벽에는 늘어남을 재는 압수용기(Baroreceptor)가 있다. 혈압이 떨어져 벽이 덜 늘어나면 신호가 줄고, 뇌줄기는 1~2초 안에 미주 신경을 풀고 교감 신경을 올린다. 심박수와 수축력이 오르고, 세동맥과 정맥이 조여 혈압이 돌아온다. 이 전체를 압반사(Baroreflex)라 한다. 2장에서 본 음성 피드백의 대표다.
다온이 회의실 의자에서 일어설 때를 모니터로 보자. 반사의 세기를 낮추면 몸이 어떻게 되는지도 비교한다.
모니터로 보는 압반사: 일어서기와 출혈
일어선 직후 잠깐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은 반사가 따라잡기 전 몇 초의 틈이다. 탈수, 오래 누워 있던 뒤, 더운 날, 술을 마신 뒤, 일부 혈압약을 먹을 때는 이 틈이 커진다. 일어서서 3분 안에 수축기 혈압이 20 mmHg 이상 떨어지면 기립성 저혈압(Orthostatic hypotension)이라 한다.
혈압 128/82: 고혈압 전단계, 평균 동맥압 약 97 mmHg
다온의 검진 혈압 128/82는 수축기만 보면 '주의 혈압'이지만 확장기가 80을 넘어 '고혈압 전단계'다(국내 지침 기준, 미국 지침이라면 1단계 고혈압). 평균 동맥압은 82 + 46/3 ≈ 97 mmHg, 맥압은 46 mmHg다. 34세에 확장기가 함께 높은 모양은 동맥이 뻣뻣해서라기보다 세동맥이 조금 조여 말초 저항이 높은 쪽을 가리킨다(4장의 다온 심장 모델도 말초 저항을 표준보다 약 10 % 높게 잡았다). 여러 연구를 모은 분석들은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이 수축기 혈압을 평균 약 5 mmHg(확장기 약 3 mmHg) 낮춘다고 요약한다. 의자에서 일어설 때 다온의 평균 동맥압은 압반사 덕분에 몇 mmHg 출렁이다 몇 초 만에 회복된다.
핵심 정리
- 흐름 = 압력 차 ÷ 저항. 저항은 반지름의 네제곱에 반비례해, 10 % 좁아지면 흐름이 약 34 % 줄고 반으로 좁아지면 1/16이 된다.
- 장기는 병렬로 이어져 같은 동맥압을 받고 각자 세동맥으로 혈류를 조절한다. 한 장기가 꼭지를 열면 전체 저항이 떨어져 심장이 더 내보내야 혈압이 유지된다.
- 압력은 세동맥에서 가장 많이 떨어진다. 모세혈관은 총 단면적이 가장 넓어 피가 가장 느리고(초당 1 mm 미만), 정맥은 피의 약 2/3를 담는다.
- 평균 동맥압 ≈ 확장기 + 맥압/3. 동맥이 뻣뻣해지면 수축기는 오르고 확장기는 내려가 맥압이 커진다. 커프 혈압은 코로트코프 소리가 처음 들릴 때(수축기)와 사라질 때(확장기)의 압력이다.
- 서 있으면 피 기둥 1 cm당 약 0.78 mmHg가 더해져 발 정맥에 피가 고이고, 압반사가 심박수와 혈관 긴장을 올려 몇 초 안에 혈압을 되찾는다. 근육 펌프가 정맥 환류를 돕는다.
- 모세혈관에서 정수압은 물을 밀어내고 교질 삼투압은 당긴다. 남는 몫은 림프가 거두며, 정맥압 상승·알부민 감소·벽 누출로 균형이 깨지면 부종이 생긴다.
확인 퀴즈
압력 차는 그대로인데 혈관의 반지름이 절반으로 줄었다. 흐름은 처음의 몇 배가 되는가?
혈압이 130/85 mmHg인 사람의 평균 동맥압에 가장 가까운 것은?
순환에서 평균 압력이 가장 크게 떨어지는 구간은?
75세의 혈압이 158/70 mmHg이다. 가장 그럴듯한 주된 원인은?
오래 서 있던 날 저녁에 발목이 붓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