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의 전기와 심전도
심장은 뇌가 시키지 않아도 뛴다. 오른쪽 심방 벽에 붙은 작은 세포 덩어리가 스스로 전기를 만들고, 그 전기가 정해진 길을 따라 0.2초 안에 심장 전체로 퍼지며 근육을 차례로 수축시킨다. 이 전기의 일부는 피부까지 새어 나와, 손목과 발목에 붙인 전극으로 잴 수 있다. 그것이 심전도다. 이 장은 박자를 만드는 세포, 박자를 바꾸는 신경, 전기가 지나는 길, 그리고 종이 위의 꼬불꼬불한 선을 읽는 법을 직접 돌려 본다.
- 동방결절 세포가 스스로 역치에 닿는 원리와 자율신경이 그 속도를 바꾸는 세 가지 방법을 설명한다.
- 동방결절 → 심방 → 방실결절 → 히스 다발 → 푸르키네 섬유의 전도 순서와 방실결절 지연의 의미를 안다.
- 심전도의 P파·QRS파·T파와 PR·QRS·QT 간격을 읽고, 심전도 종이로 심박수를 센다.
- 유도가 같은 전기 벡터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본 그림자라는 것을 이해한다.
- 심박 변이와 대표적인 부정맥이 무엇이고, 박자가 어긋날 때 펌프가 무엇을 잃는지 말한다.
스스로 뛰는 심장: 동방결절
개구리 심장을 꺼내 식염수에 담가 두면 한참 동안 혼자 뛴다. 신경이 모두 끊겼는데도 뛴다는 것은 박자를 만드는 장치가 심장 안에 있다는 뜻이다. 그 장치가 오른쪽 심방 위쪽 벽의 동방결절(Sinoatrial node, SA node)이다. 길이 1~2 cm의 작은 세포 덩어리로, 심장의 심박 조율기(Pacemaker)다.
보통의 근육 세포는 자극이 오기 전까지 막전위가 약 −90 mV에 가만히 머문다. 동방결절 세포는 다르다. 한 번 흥분한 뒤 막전위가 약 −60 mV까지 내려가자마자 다시 저절로 조금씩 올라간다. 이 느린 오르막(4기)이 역치(약 −40 mV)에 닿으면 칼슘 통로가 열리며 확 치솟고(0기), 칼륨이 빠져나가며 다시 내려온다(3기). 이 톱니 모양이 끝없이 되풀이된다.
오르막을 만드는 것은 막전위가 낮을 때 오히려 열리는 이상한 나트륨 통로다. 이름도 "이상한 전류"(펀니 전류(Funny current, If))다. 아래 시뮬레이터에서 자율신경 두 개를 움직여 오르막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자.
동방결절의 톱니: 박자를 만드는 세포
자율신경은 세 가지 손잡이로 박자를 바꾼다. 오르막의 기울기, 출발점인 최대 이완기 전위, 도착점인 역치다. 부교감 신경(미주 신경)의 아세틸콜린은 칼륨 통로를 열어 출발점을 낮추고 펀니 전류를 줄여 기울기를 눕힌다. 교감 신경의 노르에피네프린은 펀니 전류와 칼슘 전류를 키워 기울기를 세우고 역치를 낮춘다.
전기가 지나가는 길
동방결절에서 시작된 흥분은 심방 근육을 타고 퍼져 두 심방을 수축시킨다. 그런데 심방과 심실 사이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섬유 고리(판막의 받침)가 있어서, 흥분이 심실로 넘어가는 문은 단 하나, 방실결절(Atrioventricular node, AV node)뿐이다. 방실결절은 일부러 느리게 전기를 전한다. 약 0.1초의 이 지연 덕분에 심방이 피를 다 밀어 넣은 다음에야 심실이 수축한다.
방실결절을 지난 흥분은 히스 다발(Bundle of His)과 좌우 다발 가지를 거쳐 심실 벽 안쪽에 그물처럼 깔린 푸르키네 섬유(Purkinje fibers)로 초속 2~4 m의 빠른 속도로 퍼진다. 그래서 두 심실의 근육이 거의 동시에, 그것도 심첨(아래 끝)부터 위쪽으로 짜내듯 수축한다.
아래에서 흥분(노란 점)이 길을 따라 움직이는 동안 오른쪽 심전도가 한 박동씩 그려진다. 방실결절 지연을 늘려 보면 P파와 QRS파 사이가 벌어진다.
흥분이 지나가는 길과 심전도
전도 경로의 각 부분은 모두 스스로 박동할 능력이 있지만 속도가 다르다. 동방결절 약 60~100, 방실결절 약 40~60, 심실의 푸르키네 섬유 약 20~40 bpm이다. 가장 빠른 동방결절이 늘 먼저 흥분을 보내 나머지를 "덮어쓰기" 때문에 평소에는 동방결절이 박자를 쥔다. 위에서 3도 차단을 걸었을 때 심실이 느리게나마 계속 뛴 것은 이 예비 조율기 덕분이다.
심전도: 몸 표면에서 엿듣는 전기
수많은 심근 세포가 한꺼번에 흥분하고 회복할 때 생기는 전류는 몸 전체로 퍼진다. 피부의 두 지점 사이 전압 차이를 시간에 따라 기록한 것이 심전도(Electrocardiogram, ECG)다. 심전도의 각 파는 심장의 특정 부분이 흥분하거나 회복하는 순간이다.
| 이름 | 무엇이 일어나는가 | 정상 길이 |
|---|---|---|
| P파 | 심방의 탈분극(흥분) | 0.08~0.11 s |
| PR 간격 | 심방 흥분 시작 → 심실 흥분 시작. 대부분이 방실결절 지연 | 0.12~0.20 s |
| QRS파 | 심실의 탈분극. 근육이 많아 가장 크다. 심방의 회복은 이 안에 묻힌다 | 0.12 s 미만 |
| ST 분절 | 심실 전체가 흥분해 있는 시간(활동 전위의 고원기). 평평해야 한다 | — |
| T파 | 심실의 재분극(회복) | — |
| QT 간격 | 심실 흥분 시작 → 회복 끝. 심박수에 따라 달라진다 | 약 0.35~0.44 s |
아래는 다온의 검진 심전도에서 한 박동을 확대한 것이다. 파형이나 분절을 누르면 설명이 나오고, 두 개의 세로 자(캘리퍼)를 끌어 간격을 직접 잴 수 있다.
한 박동 해부와 캘리퍼
심전도 종이로 심박수 읽기
종이 속도가 정해져 있으니 R파 사이의 칸 수만 세면 심박수가 나온다. 큰 칸 하나가 0.2초이므로 1분(60초)은 큰 칸 300개, 작은 칸 1,500개다.
실전에서는 굵은 선 위에 놓인 R파 하나를 찾고, 그다음 굵은 선마다 "300, 150, 100, 75, 60, 50"을 외며 다음 R파가 어디쯤 오는지 본다. 아래에서 직접 해 보자.
칸 세어 심박수 읽기
유도: 같은 전기를 다른 방향에서 보기
심장의 흥분은 매 순간 크기와 방향을 가진 화살표 하나(전기 쌍극자, 심장 벡터(Cardiac vector))로 묶을 수 있다. 한 박동 동안 이 화살표는 고리를 그리며 돈다. 심방이 흥분할 때는 작게 왼쪽 아래로, 심실이 흥분할 때는 크게 왼쪽 아래로, 마지막에 잠깐 위쪽으로 향한다.
두 전극 사이의 전압은 이 화살표를 두 전극을 잇는 선에 비춘 그림자다. 이 선 하나를 유도(Lead)라 한다. 오른팔-왼팔이 유도 I, 오른팔-왼다리가 유도 II, 왼팔-왼다리가 유도 III이고, 세 선은 몸 앞에 거의 정삼각형(아인트호벤 삼각형(Einthoven's triangle))을 이룬다. 화살표가 유도 쪽을 향하면 위로 솟은 파, 반대쪽이면 아래로 꺼진 파가 그려진다.
심장 벡터와 세 유도의 그림자
병원에서 쓰는 12유도 심전도는 팔다리 유도 6개(I, II, III, aVR, aVL, aVF)와 가슴 유도 6개(V1~V6)로 심장을 정면과 가로 단면에서 함께 본다. 심장의 한 부분에 피가 모자라면(심근 허혈) 그 부분을 바라보는 유도에서만 ST 분절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므로, 어느 유도에서 변화가 보이는지로 위치를 짐작한다.
심실 근육의 긴 활동 전위
심실 근육 세포의 활동 전위는 신경의 1 ms짜리 스파이크와 달리 약 0.25~0.3초 이어진다. 나트륨이 들어오며 확 치솟은(0기) 뒤, 칼슘이 들어오고 칼륨이 나가며 균형을 이루는 긴 고원기(Plateau, 2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고원기 동안 세포는 다시 흥분하지 않는다(불응기). 그래서 심장은 골격근처럼 수축이 겹쳐 굳는 강축에 빠지지 않고, 매번 이완하며 다시 채울 시간을 얻는다.
심전도와 나란히 놓으면 대응이 분명하다. QRS파는 심실 세포들의 0기, ST 분절은 모두가 고원기에 있는 시간, T파는 3기(재분극)다. 그러니 QT 간격은 심실 활동 전위의 길이와 거의 같다.
활동 전위와 QT 간격
박동 사이의 흔들림: 심박 변이
건강한 심장은 메트로놈처럼 뛰지 않는다. 숨을 들이쉴 때 심박이 조금 빨라지고 내쉴 때 느려진다. 이것을 호흡성 동성 부정맥(Respiratory sinus arrhythmia)이라 하는데, 이름과 달리 병이 아니라 미주 신경이 박동마다 브레이크를 섬세하게 조절하고 있다는 건강한 신호다. 박동 간격의 이런 흔들림 전체를 심박 변이(Heart rate variability, HRV)라 한다.
심박 변이는 박동 간격(R–R)을 차례로 그린 타코그램으로 본다. 흔히 쓰는 두 숫자는 간격 전체의 표준편차 SDNN과 이웃 간격 차이의 제곱평균제곱근 RMSSD다. RMSSD는 박동 하나하나의 빠른 변화를 보므로 미주 신경의 활동을 잘 반영한다.
숨 쉴 때마다 흔들리는 박자
심박 변이는 사람마다 크게 다르고 나이가 들면 줄어든다. 같은 사람 안에서는 잘 쉬고 잘 회복했을 때 높고, 잠이 부족하거나 아프거나 훈련이 과했을 때 낮아진다. 그래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아침 HRV를 자기 자신과 비교하는 회복 지표로 쓴다. 다른 사람의 숫자와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부정맥: 박자가 어긋날 때
박자를 만드는 곳이나 전기가 지나는 길에 문제가 생기면 부정맥(Arrhythmia)이 된다. 심전도는 부정맥을 가리는 가장 기본적인 검사다. 하지만 심장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그래서 피를 얼마나 내보내는가"다. 아래 모니터에서 리듬을 바꾸면 심전도와 함께 동맥압과 어림한 심박출량이 바뀐다.
부정맥 갤러리: 박자와 펌프
심방세동에서는 심방이 1분에 300~600번 잘게 떨기만 할 뿐 제대로 수축하지 못한다. 심실을 마지막에 채워 주던 심방 수축이 사라지는 것이다. 엔진의 심장 모델로 비교하면, 다온의 심장에서 심방 수축을 빼면 같은 심박수 72에서 심박출량이 약 9 % 줄고, 심박수 110에서는 더 많이 준다. 채울 시간이 짧을수록 심방이 밀어 넣는 마지막 몫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떨기만 하는 심방 안에서 피가 고여 굳으면 뇌졸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장의 수치와 시뮬레이터는 원리를 보여 주기 위한 교육용 모델입니다. 두근거림, 어지러움, 실신, 가슴 통증, 숨가쁨이 있거나 검진 심전도 결과가 걱정되면 의료진과 상담하세요. 스마트워치의 심전도·불규칙 리듬 알림은 참고일 뿐 진단이 아닙니다.
다온의 심전도와 12주
다온의 검진 심전도는 정상 동리듬 72 bpm, PR 0.16 s, QRS 0.09 s였다. P파가 모든 QRS 앞에 하나씩 있고, 간격은 모두 정상 범위다. 다온은 12주 동안 주 3~4회 달리기를 한다. 유산소 훈련이 쌓이면 심장에 무슨 일이 생길까. 가장 먼저 드러나는 변화는 전기의 박자다. 훈련은 쉴 때의 미주 신경 긴장을 높여 동방결절의 오르막을 눕힌다.
다온의 안정 심전도, 0주에서 12주까지
정상 동리듬 72 bpm, PR 0.16 s, QRS 0.09 s. 12주 뒤 안정 심박 약 64
검진 심전도는 정상 동리듬이다. 모든 QRS 앞에 P파가 있고 PR 0.16 s(정상 0.12~0.20), QRS 0.09 s(0.12 미만), QT 약 0.38 s에 QTc 약 0.41 s로 모두 정상 범위다. 엔진의 동방결절 모델에서 신경이 끊긴 내재 박동은 약 103 bpm이므로, 다온의 72 bpm은 미주 신경이 브레이크를 꽤 밟고 있는 상태(ACh 약 0.41)다. 12주 유산소 훈련으로 미주 신경 긴장이 약 0.515로 오르면 안정 심박수는 약 64 bpm이 되고, 같은 모델에서 SDNN은 약 32 → 41 ms, RMSSD는 약 38 → 49 ms로 커진다. 하루 박동 수로는 약 1만 2천 번이 줄어든다.
핵심 정리
- 동방결절 세포는 4기에 막전위가 저절로 올라가 역치에 닿으며 스스로 박동한다(내재 박동 약 100 bpm). 안정 시 60~80 bpm은 미주 신경이 늘 브레이크를 밟은 결과다.
- 자율신경은 4기 기울기, 최대 이완기 전위, 역치를 바꿔 박자를 조절한다. 교감은 빠르게, 부교감은 느리게.
- 흥분은 동방결절 → 심방 → 방실결절(약 0.1 s 지연) → 히스 다발 → 푸르키네 섬유 순서로 퍼진다. 지연 덕분에 심방이 먼저 채운 뒤 심실이 수축한다.
- P파는 심방 탈분극, QRS는 심실 탈분극, T파는 심실 재분극. 정상 PR 0.12~0.20 s, QRS 0.12 s 미만. QT는 심박수에 따라 변하므로 QTc = QT/√RR로 본다.
- 심박수 = 300 ÷ R–R 사이 큰 칸 수 = 1500 ÷ 작은 칸 수. 불규칙하면 6초 동안 R파 수 × 10. 유도는 심장 벡터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본 그림자다.
- 심박 변이는 미주 신경 활동의 지표다. 부정맥은 박자만이 아니라 펌프 기능을 바꾼다(심방세동은 심방 수축을, 심실세동은 펌프 자체를 잃는다).
확인 퀴즈
심장 이식을 받아 신경이 이어지지 않은 심장이 쉴 때 약 100 bpm으로 뛰는 가장 알맞은 이유는?
규칙적인 심전도에서 R파와 다음 R파 사이가 큰 칸 4개다. 심박수는?
심박수 100 bpm에서 QT가 0.36초였다. Bazett 식으로 구한 QTc에 가장 가까운 것은?
PR 간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심방세동에서 심박출량이 줄어드는 이유로 가장 거리가 먼 것은?